남남
...조병화
푸른 바람이고 싶었다
푸른 강 이고 싶었다
푸른 초원이고 싶었다
푸른 산맥이고 싶었다
푸른구름
푸른하늘
푸른 네 대륙이고 싶었다
남남의 자리
좁히며
가까이
네 살 닿는곳
따사로이
네 입깁이고 싶었다
네 이야기이고 싶었다
네 소망이고 싶었다
네가 깃들이는
마지막
고요한 기도의 둥우리이고 싶었다
흙바람 갠 날 없는
어지러운 너와 나의 세월
마른 내목소리
푸른 가슴이고 싶었다
푸른 네 목숨이고 싶었다
너와 날 묻을
푸른 대륙이고 싶었다
..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오해 때문에...
남남 28
- 조 병 화
널 위해서 시가 씌어질 때
난 행복했다
네 어둠을 비칠 수 있는 말이 탄생하여
그게 시의 개울이 되어 흘러내릴 때
난 행복했다
널 생각하다가 네 말이 될 수 있는
그 말과 만나
그게 가득히 꽃이 되어, 아름다운 시의 들판이 될 때
난 행복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너와 나의 하늘이
널 생각하는 말로 가득 차서
그게 반짝이는 넓은 벌판이 될 때
난 행복했다
행복을 모르는 내가
그 행복을 네게서 발견하여
어린애처럼 널 부르는 그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기류 가득히 내게 전달이 될 때
난 행복했다
아, 그와 같이 언제나
먼 네가 항상 내 곁에 있는 생각으로
그날 그날을 적적히 보낼 때
공허처럼
난 행복했다.
조병화의 "공존(共存)의 이유"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출전 : 시집 '공존의 이유'(1963. 6)
조병화의 일관된 주제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다. 그의 시에 나타난 화자는 항상 고독한 나그네의 모습이다. 그 나그네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돈다. 이웃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며, 언젠가는 마침내 이 세상도 떠날 것을 예감한다. 그는 이 세상일에 집착을 버리면서 항상 떠날 것에 대비한다. 그것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 정리(會者定離)의 사리를 깊이 통찰한 결과이다.
시인은 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에서 보여 주듯이 이 시에서도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슬픈 것이다. 이별할 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깊은 정을 끊어야 하며, 미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제1∼7연에서는 '헤어짐'에 대비해서 부담스러운 사랑, 깊은 관계를 갖지 말고 가벼운 교제를 하며 지내자고 한다. 여기서 '헤어짐'은 남과의 헤어짐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헤어짐, 곧 죽음을 뜻하기도 하는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제8∼11행에서는 내가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책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아무리 얘기하고 싶어도, 아무리 내 속을 보여 주고 싶어도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의 시 '남남 30'에서 보이듯이 '너와 나의 깊은 외로움은 너와 나를 모르게 할 뿐'인 관계, 즉 남남 관계인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제12∼14연은 운명적인 그 날, 공존이 끝나는 날, 이별의 슬픈 날의 모습이다.
서로 냉정한 표정으로 삭막하게 지내는 오늘의 우리 삶을 되돌아볼 때, 우리 고독한 인간은 고독을 덜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며,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깊은 사랑을 하지 말자는 말은 오히려 사랑에의 갈망을 역설적으로 절규하는 것이 아닐까?
남남
네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 기쁨이었으면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슬픔이라든지,고통이라든지,
번뇌라든지,일상의 그 아픔을
맑게 닦아낼 수 있는 네 그 음악이었으면 했다
산지기가 산을 지키듯이
적적한 널 지키는 적적한 그 산지기 였으면 했다
가지에서 가지로
새에서 새에로
꽃에서 꽃으로
샘에서 샘으로
덤불에서 덤불로
숲에서 숲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에로
네 가슴의 오솔길에 익숙됀
충실한 네 산지기였으면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에
둥우릴 만들어
내 눈물을 키웠으면 했다
그리고 네 깊은 숲에
보이지 않는 상록의 나무였으면 했다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남남
-조병화-
네 파란 들이 되고 싶어라
알알이 꿈을 밴 말들이
멋대로 꽃을 피워
파란 하늘이 물결치는
빛의 바람의, 들이 되고 싶어라
인간의 괴로움, 슬픔은 도시에
인간의 외로움은
군중 속에
그리하여
인간의 일체의 욕망에서 훨 훨
벗어나
풀과 꽃의 사랑이 되고
망설이는 네 길이 되고 싶어라
그리하여 마지막 내 그 밤은
널 위하여 비는
온 하늘
네 별밭이 되고 싶어라.
만남 53
목숨은 마시다 토하는 공기
육체는 공기 머무는 의지간
인정만이
외톨이다
생각은 이곳 저곳 떠도는
허기진
선비
스스로 밝게
스스로 사그러진다
인간은 비치다 사라지는
무지개
맑게 떠있는
미소
산다는 건
변한다는 거
빛 속에서
바람 속에서
서로의 입김 속에서.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는 네 하늘이 되고 싶어라
경계도 없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생명, 희열, 영광, 무한, 사랑과 신뢰
끝없이 피어 만발한 빛의 물결
네 그 대륙이 되고 싶어라
그 푸른 풀과 바람
그 둥우리가 깃들여 있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남남10 ..... 조병화
남남18 - 조병화
네 곁에서 한잔 하고 싶어라
시간을 잃고, 장소를 잃고, 세상을 잃고
젖어서
네 가슴에서 마냥 취하고 싶어라
별을 흐르는 그 피곤도
변화무상한 인생 풍경에 떠서
숙명의 씨앗을 품고 앓는
보이지 않는 네 빛나는 맑은 눈물을
내 공적한 가슴에 채워
한 방울 남김없이 마시고 싶어라
하늘이 인간에게 떨어뜨린
뜨거운 생명의 번개를
너와 타서
흔적도 없이 말려버리고 싶어라
그리하여
때로
네게만 보이는
태양의 사막
그 연한 샘이 되고 싶어라.
남남20 - 조병화
비밀의 장소에서 만나세
절망이라는 이름의 비밀의 장소에서 만나세
차표는 내가 마련하세
거스름돈 다 치워
되도록이면 먼 그 정거장에서 만나세
철학 이야기란 이제 그만두세
종교 이야기란 이제 치우세
형이상학의 이야기란 아예 말기로 하세
가슴의 이야길 하세
시간의 이야길 하세
시들어가는 풀들의 이야길 하세
별들의 이야길 하세
기도의 이야길 하세
그리고 너와 나의 뜨거운 시의 이야길 하세
그리고 최초의 악술 하세
그리고 최초의 입술을 대세
그리고 구름이 되세
그리고 바람이 되세
그리고 하늘이 되세
그리고 사랑스러운 들이 되세
그리고 한 그루 장미가 되세
그리고 끝없는 시간이 되세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찾는
상한 시인의
마르지 않는 긴 긴 노래가 되세.
* < 남남 >은 조병화 시인의 제 22시집(詩集)이며
장편 연작시(連作詩)로 총 55편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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