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스크랩] 나명욱 시 모음

orchid mom 2009. 2. 23. 11:20

바람 같은 너


너는 이제
내 속에 없다
이미 네가 꿈꾸던
바람으로 머물다
바람으로 떠나갔을 뿐

너는 한 줌
흙도 되지 못하는
잡을 수도 만져볼 수도
형상도 없는 뜬구름 같은

처음부터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허공 속의 회한 같은
아름다움을 과장한
사랑을 과장한 이슬 같은
햇살 비추면 사라지고 마는
허무일 뿐이었다

더 이상 너에게
연연할 빈 가슴으로
느끼는 일의 쓸쓸함
따위는 던져버리고 싶다

넌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바람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바람은 바람과 친구하며
꽃은 꽃과 친구하며
나무는 나무와 안개는 안개와

어울리는 것들끼리
벗하며 살아가는 것이
서로 이해하며 슬퍼지지 않는 삶

너와 나는
잠시 스치는 인연의
숲 속의 나무와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내 인생에 바람은 없다

단 한번도
그 무엇도
내 인생에 바람을 꿈꾸어본 적은 없다

선택했던 모든 일들도
진실이 아니면
차라리 깨어져 죽기를 바랬을 뿐

나의 생에 스치는
농담 한 마디도 바람은 없다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은
애당초 하지 않고
실수였다면 그 실수마저

책임져야만 하는
오직 난 길이 아니면 걷질 않았고
그 길이 한숨의 골짜기

거꾸로 올라야 하는
성벽같은 광기일지라도
반드시 한 번 던진

그 무엇도 단 한 순간도
난잡한 바람 같은 일은
꿈꾸어본 적이 없다

있다면 오직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이 혼란스런 인생을

그러니까
나의 꿈대로 가지 않는 이 길을
단 한 번에 뒤바꿔 보고 싶은
충동으로  늘 출렁였을 뿐

 

 

 

 

 당신 하나면 됩니다 / 나명욱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울린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 저 친구 만나 이야기하는 일들은

 그저 순간 공허한 말로 끝날 뿐

 진정한 서로의 마음 깊은 영혼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오랜 친구처럼

 그 친구의 허물과 향기까지 다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나누어진 기회도 적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하나 안다는 일도 쉽지 않은 짧은 시간 속 삶

 이젠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 속에서 절절한 사랑 나눌 수 있는 사람

 당신, 당신 하나면 됩니다.

 

 

 

 

사랑하기에

사랑해서는 아니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인가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
사랑할 수만은 없는 그 외로움은
또 얼마나 깊고 쓸쓸할 것인가


사랑하나 이별해야만 하는
만나서는 아니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밤새 몸을 뒤척이며
헤매여야 만 하는 괴로움인가


그러나 아 !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간절한 안타까움으로 행복을
기도하며 보내는 그 절절한


슬픔의 상처를 안고 가는 마음은
또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할 수 없는
아름다울 수 없다면 이별해야만 하는


서로의 진실한 사랑의 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돌아서고


비켜서줘야만 하는
자유롭게 놓아주어야만 하는


사랑하기에 더욱 참아야 하고
두려운 그 아득한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

 

 

 

나도 가끔은 외롭다

나도 가끔은 외롭다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 때

그런 생각과 마음들을
혼자만의 가슴에 담아
허공만 바라보아야 할 때

사람들의 아픔을 보고도
도움이 될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을 보아야 할 때

사람들의 슬픔을 보고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용기 없는 마음이어야 할 때

그런 생각들이 한낱 부질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와 나를 괴롭힐 때

나도 가끔은 외롭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순간은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순간은

길잃은 거리의
노숙자들을 보아야 했을 때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배부름을 보아야 했을 때

왜 누구는 선하게
살아왔음에도 불행해야만 했는가

왜 누구는 악하게
살아왔음에도 행복해야만 했는가

왜 누구는 올곧게 살아왔음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스러져 가야만 했는가

왜 누구는 방탕함으로
많은 이들을 혼란스러움에
빠뜨리고도 떳떳할 수 있는가

나는 가끔은
그러한 수많은 의문으로 끝없이 외롭다

 

 

 


바람으로 살고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없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없다면
나 차라리 바람으로나 살고파

두렵고 절망적인 것들
훌훌 털어버리고
세상 것들 모두 담 쌓고
깊은 동굴 속에나 들어가

작은 꽃과 나무, 강과 바다
저 산들이 푸르게
보이는 자연과 함께
바람이나 되어 하하 웃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이슬 한 방울 건네주고
외로운 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나 들려주며

산 속 물 맑은 곳에서
나 오두막 하나 짓고
바람 같은 나그네나 되어
살아보고 싶어

봄이면 노랑 분홍 꽃들과
어울리며 나비 따라 춤추며
여름이면 비 쏟아지는
숲속에서 참았던 울음 울며 울며

가을이면 허수아비가 되어
하늘 바라보고 새들과 노래하며
겨울이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두운 동굴 속에나 들어가

곰처럼 그동안 못 잤던
잠이나 실컷 자고 싶어
어차피 지키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꿈같은 세상이라면


 

 

38과 43사이

그 사이가 힘들었어
내가 지금 그 사이잖아
전에는 조용히 살았었지
이를 악물고 앞만 보며 살았었어
정말이야 그래 그랬었지
그런데 말야
39에 놀랄 일이 생겼지 뭐야
사람과 세상을 보았던 거야
그때서야 나는 참 바보지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고 기뻐했지
그런데 말야 빠르고 확 트인 고속도로는 더 어지럽기만 하더군
신기루가 아니었어 나는 겁이 나고 무서웠어 소심한 나는 말야
그런데 어떡하지 이미 시동은 걸어놨으니 멈추면 죽음이야
갑자기 맑은 시냇물 소리도 밝은 별들도 그리워지는 거 있지
들판에 그대로 쓰러져 눕고만 싶었어 풀 냄새만 맡으며
흰 구름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렇지만 달려야 하잖아
새끼들이 따라오잖아
달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선(善)일까 ?
악(惡)일까 ?

 

 

 

바다에 가고 싶다

가슴이 답답할 때는
바다에 가고 싶다
꽃피는 봄이어도 좋고
뜨거운 태양빛 비추는 여름이어도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도
하얗게 눈 쌓이는 겨울이어도 좋은
시원한 바다를 떠올리면
엄마품 속같이 넓은
나의 모든 것을 듣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이해하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너그러운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바다에 가면
눈빛만으로도 친구가 되는
높은 하늘의 햇살이며
작은 수많은 모래알들
투명한 바닷물에 섞여 노는
반짝이는 조개들이며 춤추는 파도
사는 일이 괴로울 때는
바다에 가고 싶다
침묵으로 모르는 척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노래들로
부딪쳐 부서지는 너울들로
나를 즐겁게 평화롭게도 하는 !

 

 

본명 나명욱 (伍含 나은희) 1958년 서울 출생 1998년 3월 '편지' 혼돈의 나날 삶의 향기에 발표 후부터 활동함 2001년 해동문학 시 등단 2001년 사이버 문학 수필 당선 작가 선정 고려대학교 소설 창작 우수상 수상 2007년 사람과 환경 시 우수상 수상 해동문학 사무국장 이사 성북문인협회 이사 역임 현ㅡ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해동문학, 광화문 사랑방 시낭송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료 발굴위원 간사 ㅡ정의로운 나라 평화로운 사회 아름다운 사람을 꿈꾸며 영원을 향해 가는 시인 ㅡ 한국문학도서관 홈 http://nmw1221.kll.co.kr/ 이메일nmw1221@naver.com

출처 : ~ ~ * 마 음 정 원 * ~ ~ ^ . *
글쓴이 : 초 록 정 원 원글보기
메모 : 바람으로 살다가 바람으로 가고싶은데... 욕심으로 바람처럼 살지를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