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스크랩] 난 그냥 자주 확인하고 싶었어요

orchid mom 2009. 4. 25. 08:57


그여자

우린 거의 매일 싸우곤 했어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 한마디에 화내고 짜증 부리고..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한 달 후에 서로 메일을 보내서 마음을 확인하자고 했죠.

뭐가 문제였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난 그냥 자주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처음처럼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 사람은 그걸 의심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늘 짜증스러워하고.

그런 반응에, 난 또 화를 내게 되고..

많은 생각 끝에 메일을 보냈어요.

우린 조금 엇갈렸을 뿐이라고,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고,

이제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하자고,

난 아직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데 메일이 오지 않네요.

그럴 정도로 내게 아무 마음도 남아 있지 않을 걸까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 남자


아주 예전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그 날 우리 아버지가 많이 취해서 들어오셨어.

아버지는 갑자기 나한테 봉투를 주면서

그 속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좀 봐 달라고 하셨어.

아버지는 변명처럼 그런 말씀을 하셨어.

월급을 받았는데 빌린 돈을 돌려주고 외상값도 갚고 그러고 나니깐

월급 봉투가 너무 얇야져 버렸다구.

어머니 얼굴 보기가 미안해서 술 한잔 마셨다구.

아버지는 그 날, 집에 다 오도록 월급 봉투를 열어 보지 못하셨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가 무서워서

혹시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까 봐.

어린 마음에도 그 날은 아버지가 참 불쌍해 보였어.

참 약해 보였지.

몇 시간째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축축해지도록 메일을 열어 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오늘 참 약해 보인다.

천 원짜리만 몇 장 남아 있던 아버지의 빈 월급 봉투처럼,

내가 너한테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미나 / 그남자 그여자
출처 : FREE-ZONE
글쓴이 : gungwoo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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