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접한 건, 당시 신군부실세 허삼수와 맞붙기 위해 통일민주당후보로 부산동구에 출마한다던 소식이 들려오던 즈음 B대학에서의 고교 동문 신입생환영회석상에서였다. 우연히도 바로 옆좌석에 앉았던 내게 그는 "혹시 동원할 수있는 조직이 있으면 도와달 라!"고 말을 건냈고, 안타깝게도 난 조폭도 운동권도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는 그해 선거에서 승리,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되지만 난 그로인해 마음의 빚을 하나 안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직장인이 되어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던 내가 일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건 전국굴지의 대형유통업체들의 부산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응한답시고 무리하 게 규모를 확장하던 회사가 IMF의 직격탄을 맞아 부도가 나면서부터였다. 오너가 투신하고, 법정관리중이던 회사가 M&A냐 파산이냐의 기로에 서게되자 노조가 생겨났다. 어찌어찌하다 노조설립전 고교선배이기도한 월급쟁이 사장을 몰아내고자하는 모임에 사원대표격인 5인에 끼인 전력 덕분에 대기발령상태에 있던 시기에 주식에 눈을 돌린 게 화근이 되어 아내가 모르는 빚을 지게된다. 한편, 6명이 뜻을 모아 노조설립을 도모하게되고 설립인가가 거부 될 위기를 맞아 부랴 부랴 위원장을 바꾸는 등의 우여곡절끝에 노조에 발을 담그게 된다. 해고와 복직을 거듭하고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까지 불사한 열정으로 노조의 몸집은 키 워냈지만 허망하게도 회사는 파산... 마침내 백수가 된, 가정의 복원을 위해 매진해야하는 내게 다시 한번 그가 말없이 나를 유혹했다. 한동안 애써 무시하거나 회피하였지만 이전에 담아둔 그 마음의 빚이 '노사모' 로 이끌고야 만 것이다. '2002 대선이 끝나고 역마쌀을 일용하느라 여유가 없었으며, 재임중에 생각이 달라 차츰 거리를 두게되고 NO의 입장에 자주 서기는 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난 그를 진정 사랑했을까? -.- 손문상 화백(프레시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한 가지 흠집을 무마하는데 열 가지 세계관을 내세워 낯빛 한 번 바꾸는 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낸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한 줌 봄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다 끝내 주변과 스스로를 망친다. 비아냥 섞인 세상의 손가락은 주로 후자를 겨냥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자멸하는 순간, 세상의 손가락들은 가장 빠르고 침통하 게 애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구제한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 어른스럽고, 아프다.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부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아도 좋을 곳으로 가시길. 허지웅 드림. 출처:허지웅의 블로그
출처 : 無翼鳥의 날개짓
글쓴이 : 자유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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