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술가에게는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초기 작업부터 화가 박광진은 자신의 회화적 변모의 도약 대상으로 자연을 선택하고 있다. 윤기 있고 뉘앙스가 있는 터치와 확실한 그래픽 구조를 통해 사실주의적인 재현을 고집하는 그는 그림 소재로서 도시 풍경, 동물이 있는 장면, 막 피어나는 꽃들의 군집, 중첩된 하모니가 있는 사찰 풍경, 설경(雪景)의 지평선, 또는 물줄기나 여체를 연상시키는 가는 선들로 군데군데 잘린 숲길을 선택한다.
그가 갖고 있는 직관이 정확성에 힘입어 주위(환경)를 포착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세계에 직면하여 내면성의 도약이나 감정이 변화 곡선에 상응해가며 구체적이고 확고한 사고를 합치시키는 것. 즉 몽테뉴의 표현을 빌자면 '사고의 전이(轉移)' 라는 것을 화가 박광진은 빨리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는 고도의 테크닉과 화면 구성에 신중함에 의지하여, 당대의 조류였기 때문에 그 자신도 쉽게 참여 할 수 있었던 추상표현이나 모노크롬 또는 앵포르멜의 공허한 추상성보다 우주의 유동성에 대한 해석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관찰자인 화가 박광진의 표현 언어는 독특한 그 자신 영토의 복원에 근거한다. 이를 위해 그 무한한 변화를 왜곡하지는 않으나 혹은 황무지의 상태, 혹은 우리 생활 속의 더 가까운 것으로 변모시켜 그것에 마음 속 깊이, 정신적으로 심취된 우리를 발견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주제 자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화가가 그것을 자각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적용된 전사지(轉寫紙)로서 이 캔버스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방식이 리듬의 물결 속에서 세부적인 것을 중요시하고 우리가 거기서 극사실주의적인 인상을 갖게 될지라도, 그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사실주의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적(詩的) 사실주의,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부드러우며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시적 사실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윤이 나고, 중립적이고, 과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표현 대화가 감각 속에서 자리잡히고 표현의 물결치는 템포 속에서 흐른다. 이렇듯 넘실거리는 파도의 장식속에서 야생의 미풍으로 빗질되어지는 흰 물결이 이는 풍경, 마치 작은 점들로 채워진 듯한 반짝이는 평야, 산허리까지 펼쳐져 한들거리는 미모사의 군집, 또 한편으로는 가을 바람 아래 광야에 격랑(激浪)이 이는가 하면 다른 화폭에선 이른 봄 햇빛으로 데워져 구부러진 줄기를 떠받치고 있는 밀밭이 펼쳐지기도 한다.
화가 박광진은 캔버스나 종이, 유화, 아크릴, 과슈 작업을 번갈아 하고 있다. 작업은 빠른 손놀림에 의한 크로키, 때로는 기억더미 속의 이미지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적인 것의 과잉에서 일종의 후광으로 둘러싸인 의도적인 근사치의 어휘들로의 구성을 가능케 해준다. 이로써 "사실보다도 더 사실적이어야 한다" 는 세잔느의 생각에도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지면을 스치는 빛과 부드러운 색도 변화를 사용하여 화가는 미묘한 대조, 평면과 반평면, 질감의 긴장감, 틈이 있는 부분과 절제된 포기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들은 끊임없이 통제되는 제스처와 이 간극을 받쳐주는 데생을 통해 더욱 가능해지고 있다.
놀랄 만큼 잘 표현되고, 신중한 그러나 전혀 차갑지 않은 이 그림은 오늘날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과는 반대로 내적 감각적 접근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 감각적 접근과 예술가는 상호 교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창조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형태의 다양성과 종합 속에 자연스러운 유입을 반사했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 쉽게 촉지(觸知)할 수 있고, 그 어느 그림보다도 은밀히 자연을 탐구하는 그림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제라르 슈리게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