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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찬비 내리고

orchid mom 2010. 9. 20. 09:10

 

     

     

     

     

      낯선 편지 / 나희덕

       

      오래 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 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

       

      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

      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

       

      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

      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

       

      온몸이 눈이거나

      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

       

      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

      네 편지를 다시

      접어넣는 순간

       

      나는 듣고 말았다

      검은 포도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출처 : 두엄자리
글쓴이 : 조각의to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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