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결혼을 한다.
어떤 이에게는 기쁜 소식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무덤덤한 소식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돈 나갈 일이 걱정되는 소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 두 여자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만의 감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결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여자가 결혼식장 맨 뒤에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
어느 결혼식에서나 그 자리는 특정인들을 위한 지정석이다.
식을 지켜보다가 언제든 슬며시 빠져나갈 수 있는 자리니까.
그녀는 10년전, 9년 전, 그리고 죽 올라고 5년 전까지 그의 첫사랑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그것은 첫사랑이었고,
그들은 그 사랑이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끔한 예복을 입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새신랑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 결혼이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게 아니라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때 옆에 있는 사람과 하는 거구나...하고.
그러자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그녀의 표정에 올라 앉았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한 여자가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서 알아채지 못한 척했지만,
식장에 신랑의 옛 애인이 와 있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그 여자가 신경 쓰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그 여자가 그의 첫사랑인 것도 분명하고,
그들이 오래 만난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결국 헤어졌고, 모든 게 과거로 남은 것이다.
'지금 그 남자와 결혼하는 건 나고, 미래를 나눌 사람도 나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내심 뿌듯해 하고 있었다.
'지난 사랑이란 아무리 대단했어도 결국
큰 줄거리에 끼지 못하는 에피소드일 뿐이야.'
그리고 그녀는 입장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관한 1000자 고백 / 안현민
옛 애인의 결혼식날 사람들은 뭘 할까,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릴 수도 있겠지.
남태평양의 해변가에 누워 칵테일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서
까짓거 쿨하게 행복을 빌어주는거다,
아니면 돌멩이가 잔뜩 든 배낭을 메고 북한산에 오르거나
걸어서 잠수교를 횡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산하는 길 위에 돌멩이를 하나씩 버리다가 혹은,
찰랑이는 강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도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출근했다.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혼자 남았으며, 혼자 남은 사람으로서 강하게 생활해왔다.
튜브를 누군가에게 던져주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않았으므로
서른을 넘기도록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누구도 결정적으로 믿지 않았으며,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빛 속에서도 나는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적막감을 느끼곤 했다.
어떤 외부의 빛도 맨살로 직접 느낄 수 없게 하는 어둠의 덩어리가
내 몸을 두꺼운 외투처럼 감싼 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캄캄한 방보다 밝은 대낮의 거리에서,
나를 결박하고 있는 어둠의 무게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이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그 어둠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깊은 수심 어디쯤의 먹먹한 침묵같은 어둠이
내 웃음을 봉하고 몸을 묶었다.
한강 / 검은 사슴
요즘은 만나면 처음에는 웃지만
술이 들어가고 잠시 시간이 흐르면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가 많다.
그런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암리타 / 요시모토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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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 -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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