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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어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 자정도 한참 지난 시간 우리는 담배연기가 자욱해 공기가 푸르게 보이던 어떤 방에 앉아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너의 얼굴에 떠오른 난 여기에 없어라는 표정을 보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어. 우리가 같이 본 영화를 네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네가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는지,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얼마나 다른지 낙담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했어. 나는 네가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윗입술을 내밀며 글을 읽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너를 바라보는 얼굴이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응시하고, 그러고는 방금 떠오른 것을 찾는 양 핸드백을 뒤지는 모습을 사랑했어. 한 짝은 옆으로 누운 좁은 돛단배, 한 짝은 등이 굽은 고양이처럼 서서 몇시간이고 너를 기다리던 하이힐 안으로 서둘러 발을 넣는 모습을 사랑했고 많은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흙이 묻은 신발을 다시 비대칭적인 외로움 속에 남겨두기 전 너의 엉덩이, 다리, 발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능숙한 움직임을 사랑했어. 내가 사랑한 것은 너였어. 다른 사람은 미로같은 계단을 돌고돌아 극장밖으로 나오는데 너는 지름길을 찾아 먼저 인도로 나올때 입가에 어리는 미소를 사랑했어. 자동차들이 거리를 지나는데도 한쪽 인도에서 맞은 편으로 단걸음에 유쾌하게 건너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너를 걱정했고 너를 사랑했어. 내가 두 손으로 너의 머리를 감싸 안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며,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바라볼 때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사과를 세로로 잘라 완벽한 별모양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너를 사랑했고, 어느 오후 어떻게 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너의 머리카락 한 올을 내 책상 위에서 보았을 때 너를 사랑했으며, 어느 날 함께 외출했을 때 만워버스 손잡이를 나란히 잡은 우리 손이 별로 닮지않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았을 때 내 몸을 바라보듯 너를 사랑했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기차를 볼 때 너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을,그 슬픈 눈길과 똑같이 닮은 것을, 전기가 나가 우리 집 안의 어둠과 밖의 밝음이 천천히 자리를 바꾸었을 때 다시금 너의 미묘하고 슬픈 얼굴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속수무책의 질투심으로 터질 듯 아팠지만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했어.오르한 파묵 / 검은 책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잊었다 생각 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 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가두고 풀어 주는 내 마음 감옥을 아시는지요.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 봅니다.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바람 속을 걷는 방법 / 이정하
♬ 티아라 -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