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친 당신, 나에게 오세요.
나는 당신의 의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잊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글.그림/이수동<토닥토닥 그림편지 中 page 16>
사랑, 번지다
그녀가 온다
두둥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달빛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끄러움 잘 타고 소심한 나는 그렇습니다
태양 같이 넘치는 사랑을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대가 단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흥에 겨워 꽃을 피워 올릴 수 있습니다.
마중
꽃바람
높은 사랑
꿈
가난한 이들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그림편지
이수동의 〈토닥토닥 그림편지〉
어제 평소 알고 지내던 벗이 아파 쓰러질 지경이니 자신을 업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부랴부랴 그가 살고 있는 3층 옥탑방으로 달려갔다. 헌데 이를 어쩌랴. 그가 멀쩡한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졸지에 초상이라도 치를 뻔 했으니.
그와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난한 시골 목사를 안다고 했다. 이제 곧 칠순이 가까운, 장애우들의 벗으로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허리 구부정한 목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그는 그 목사를 만나러 화천 땅을 헤집고 다녔다 한다. 김 스무 톳을 사 들고서.
화가와 목사. 뭔가 어울리지 않는가.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신 그는 사실 붓쟁이다. 그리고 그와 내가 아는 시골 목사는 작가다. 붓쟁이는 유명하지 않으나 그 목사는 유명 작가다. 붓쟁이인 그가 어제는 내게 시를 써서 들려줬다. 그리고 멋진 그림도 그릴 계획이라 했다. 어쩌면 방 한 칸 짜리 그 옥탑방은 원대한 창작 세계를 열어줄지 모르겠다.
이수동의 〈토닥토닥 그림편지〉(이수동 저, 아트북스 펴냄)도 가난한 이들과 힘들어 하는 이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과 사랑을 안겨주는 멋진 그림 편지였다.
학창시절 미술학원에 다닐 학원비조차 없던 그로서는 그 한을 풀려고 온통 그림에만 매달렸고, 뜻하지 않게 자신의 그림이 빗발치듯 팔려나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드라마와 달력과 영화 포스터와 기업광고 이미지에 그의 그림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 뚜벅뚜벅 제 길을 걷다보니 엉뚱한 데서 길이 트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까닭이었을까?
그의 그림에 종종 달과 산과 나무와 눈이 펼쳐지는 모습이 보이는 게.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와 '사랑가'도 달빛 아래의 커피와 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가 그린 '나의 친구'는 화분을 붓통으로 쓰고 있는 걸 표현한 그림이다. 어느 날 친한 벗이 자기 화실에 멋진 화분을 놓고 갔는데, 꽃을 돌보지 못한 탓에 그 꽃이 말라 비틀었고, 그 사람 생각에 그걸 붓통으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가 그린 그림 하나하나에는 모든 사연들이 다 들어 있는 셈이다.
그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무명 시절 그가 그린 그림들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면, 그의 어머니는 그 그림과 함께 손수 지은 버선도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 시절 그가 그린 그림보다도 더 잔뜩 쌓여가던 버선들을 볼 때면 속이 타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런 버선을 깁는 어머니마저 뵐 수 없는 생각에 마음이 싸할 뿐이라고 한다.
'그래島'란 섬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만 있는,
이어도만큼 신비한 섬입니다.
미칠 듯 괴로울 때,
한없이 슬플 때,
증오와 좌절이 온 몸을 휘감을 때,
비로소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빛을 내며 나타나는 섬.
그게 '그래도'입니다.
섬 곳곳에는
"그래도 너는 멋진 사람이야"
"그래도 너는 건강하잖니?"
"그래도 너에겐 가족과 친구들이 있잖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단다"
같은 격려문들이 나붙어 있습니다.
그래島는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용서와 위로의 섬입니다.
당신의 그래島는 안녕하십니까?(21쪽)
이 그림편지를 대하는 내 마음이 울컥했다. 왠지 내 삶도 허전하고 뭔가 애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제 만났던 그를 생각하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기다려주는 이 없이 매번 옥탑방에서 빈방을 대해야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그런 나나 그나 '그래島'라는 시는 그래서 굉장한 용기를 주지 않나 싶다.
그가 그린 80통의 그림편지들은 잔잔한 위안이 된다.
- 오마이뉴스
사랑의 가치 당신에게 갑니다
이수동 작가의 설레고 따뜻한 신년맞이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 분)의 그림을 그린 이수동(52) 작가.
싸이월드 미니홈피마다 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아래 끼적인 글귀는 홈피 주인의 심사를 짐작게 했다. ‘해후’ ‘그녀가 온다’ ‘당신이 잠든 사이’….
제목에서 보듯 그의 시선은 사람과 사랑을 응시한다. 지난 10년간 그의 작품이 폭넓은 사랑을 누리는 이유다.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송아당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이수동’ 이름 석 자를 알린 일등공신은 ‘가을동화’. 그 다음은 싸이월드다. 그는 본디 대구에서 활동하던 지역작가였다. 2004년에야 서울로 올라왔다. 아내와 두 딸을 두고 혼자 생활하려니 아무래도 마음이 헛헛했다.
쉴 새 없이 작업하면서 미니홈피에 글과 그림을 부지런히 올렸다. 1촌이 1800명으로 늘고 이름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미니홈피를 닫았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은 정말 감사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오픈되니 곤란한 부분이 생기더군요. 원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 그림 값에 대한 핀잔, 심지어 그림을 자주 그린다는 지적이 가감 없이 날아왔어요. 고민 끝에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
그는 최근 그림과 에세이를 모아 ‘토닥토닥 그림편지’(아트북스 펴냄)라는 책을 냈다.
그림마다 일기처럼 간단한 감상을 덧붙였다.
“달君! 어서 오시게.
이 밤 자네와 한잔하며 긴 이야기 나누고 싶네”
(어서 오시게),
“많이 미안하거나 혹은 너무 보고 싶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당장 장미꽃 한 다발 사들고 문을 나서세요”
(장미꽃 한 다발).
용기와 위로를 주는 그림과 글이다.
“언제부턴가 주제를 ‘사랑’으로 정했어요. 큰딸이 제가 열렬히 사랑하던 스물다섯 살이 됐어요.
딸과 팬들에게 제가 넘어지고 부서지며 배운 사랑의 가치를 전하고 싶었어요.
‘피곤하고 힘들어도 보고 싶으면 논밭을 가르고 마중 가라’(마중),
‘좋은 술이 생기면 곧장 한걸음에 달려올 친구들을 불러라’(좋은 술이 생겼다)는 사소한 메시지들이죠.”
꽃 피워 놓고 기다리다, 61×90.9cm, 2010년, 꿈꾸는 마을, 50×25cm, 2010년, 좋은 술이 생겼다, 24.2×33.4cm, 2010년 (왼쪽 그림부터).
꼭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리는 건 아니다. 가족, 친구, 은사 등 사람 사이 따뜻한 모든 감정을 대상으로 한다.
그림 그리는 남편과 아빠로 가족에게 소홀했던 탓에 가족 사랑이 특히 각별하다. 40대 후반에 이름을 얻기 전까지 살림은 아내가 미술학원을 하면서 꾸렸다.
“돈도 못 벌고 방랑벽은 넘치고. 화가는 구조적으로 가족한테 잘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특히 대구 마초에
술을 좋아해 아이들이 저를 싫어했죠. 저는 예술을 한다지만, 가족을 엮는 90%는 돈과 사랑이니까요.
그래서 컬렉터들한테 성의를 다합니다.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물감 걱정 없이 그림 그리고 딸들과도 사이가 회복된 거니까요.”
男子, 40.9×53cm, 2010년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가만히 캔버스를 들여다보다가 글귀를 보면 내용이 맞아떨어진다.
그의 영감을 건드리는 것은 시, 꿈, 그리고 착시. 시 글귀에서 화폭을 구상하고 꿈과 신기한 이미지에서 그것을 발전시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시는 글로 된 비주얼인데, 차츰 덜 보게 되더군요. 쉰이 넘은 지금은 시가 말하는 게 내 생활이구나 싶어요. 반수면 상태에서 꿈을 꾸거나 한 곳을 응시할 때 보이는 착시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방법도 자주 씁니다.
10년 전에는 그림이 꼿꼿하고 외로웠는데, 지금은 많이 밝아졌어요. 제 마음이 변한 까닭이죠.
2011년에도 묘하게 설레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습니다.”
주간동아
타는 가슴
그녀가 가는길,
그녀의 그림자
그에게는 모두 꽃길이어라
나는 당신의 의자입니다
마중 4호 2008
그녀가온다 100호 2008
어서오세요 20호 2008
꽃밥
상생
인연
있잖아요, 나는 꽃이랍니다
받은 편지 호주머니에 잘 넣고
그대 찾아 갑니다.
꽃같은 그림자가 먼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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