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스크랩] 세상에 나와 나는 / 나태주

orchid mom 2013. 11. 4. 11:23


 

 

 

        + 세상에 나와 나는
          
        세상에 나와 나는
        아무 것도 내 몫으로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푸른 하늘빛 한 쪽
        바람 한 줌
        노을 한 자락

        더 욕심을 부린다면
        굴러가는 나뭇잎새
        하나

        세상에 나와 나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간직해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꼭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단 한 사람
        눈이 맑은 그 사람
        가슴속에 맑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

        더 욕심을 부린다면
        늙어서 나중에도 부끄럽지 않게
        만나고 싶은 한 사람
        그대.
        (나태주·시인, 1945-)


        + 가벼운 농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좋겠어
        뻐꾸기 울어대는 산골이면 좋겠어
        마루가 있는 외딴집이면 좋겠어
        명지바람 부는 마당에는
        앵두화 속절없이 벙글고
        따스한 햇살 홑청처럼 깔린 마루에는
        돌쩌귀처럼 맞댄 아랫도리 열불 나고
        뻐꾸기 소리인지
        곰팡이 슨 목울대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모를
        신음소리에 놀라
        장독대 옆 누렁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대로 마루에 벌렁 누워
        아지랑이 몽롱한 한나절
        늘어지게 낮잠 자면 좋겠어
        그렇게
        가벼운 농담처럼 사흘만
        (김동준·시인)

         

출처 : 두엄자리
글쓴이 : 조각의to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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