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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orchid mom 2014. 6. 20. 13:02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의 삶의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김승희, 장미와 가시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 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의 맞불 한 번

그 환희로

화형도 겁 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루고 싶었음을


김남조, 성냥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널 만나고부터는

가지고 싶던 것 다 가진 것 같다


이생진, 널 만나고부터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당신과 나 사이로 바람이 분다

당신과 나 사이에 창이 있어야

당신과 내가 눈빛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창 밖에 서 있어야 한다면

당신은 그저 다정한 불빛 안에서

행복해라 따뜻해라


황경신, 거리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군요

벗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윤보영,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물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밭을 몰고 왔고

눈밭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안도현, 강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꿈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천양희, 하루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너에게








출처 : 두엄자리
글쓴이 : 조각의to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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