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 / 박후기
틈을 노려라
파고들지 않으면 살 길은 없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을 파고드는 인파이터가 되라고 주문했다
엎질러진 물처럼
나는 틈만 보이면 깊숙이 파고들었다
갈라진 벽 속으로 들어가 벽이 되었고
링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인생에 등 보이지 않았다
섀도복싱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했지만
거울 속의 제 몸을 끌어안지는 못했다
세상은 틈으로 만들어진 퍼즐,
모든 벽이 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터진 퍼즐이 되어 쏟아져 내렸고
어긋난 시절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웃파이터로 살고 싶었지만
치고 빠지는 것이야말로 비겁한 짓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고장 난 인공위성처럼 지구를 겉돌았고,
아버지는 틈 많은 세상의 스파링 파트너로 살다가 땅속으로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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