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새벽 네시에 누가 메시지를 남긴다고..바보 같으니.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안나 가발다 벽은 단절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금이다. 미안하지만 이앞에서 이만 돌아서라는 표지다. 인생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벽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견고한 벽이 있다. 내가 세운 벽 앞에선 오만해지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벽 앞에선 막막하다. 벽 앞에 서면 우리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김병종 / 라틴화첩기행여름에 그 거리로 돌아가면, 나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걷고 창고의 돌 계단에 걸터 앉아서 홀로 바다를 바라본다. 울고 싶을 때는 죽어라 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런 것이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나는 한숨을 쉬고 몇 잔째인지 알 수 없는 온더락의 남은 분량을 한 입에 비워내고, 돈을 지불한 뒤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거리의신호등 앞에서 서서 '이번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하고 생각했다.그저 이번에인 것이다. 5분 후에, 10분 후에, 15분 후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면 좋을까?어디에 가면 좋을까?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어디에 가고 싶은 걸까?그러나 나는 단번에 그 답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외로우니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니까 더 외로워진다는 말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인간이란 아무리 애써도 외로움의 바다에서 떠오를 수가 없다. '이제 사람은 사절이야.'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감정은 포기해 버리자.'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자신이 인간인 이상은 사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것 또한 쓸쓸한 이야기겠지만.누에고치 안에 있는 것처럼 되고 싶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태아 같은 자세로, 저편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어렴풋한 흰 빛에 싸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나날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 지겨운 일이 있어서 더 이상 어찌 해볼 도리마저 없어져 버렸을 때, 방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가서 무릎을 세운 다음 그 무릎을 껴안고 몸을 아주 작게 움츠리고 있으면,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꿰뚫고 지나가는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진다. 이 느낌이 누에고치 안에서 느끼는 기분과 약간은 닮지 않았을까.이렇게 가장 괴로울 때 조차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사기사와 메구무 / 레토르트 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