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 잠재적 연인의 갸날픔에 끌리는 이유는
그 갸날픔이 주는 안도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의 처절한 전투와 팍팍한 노동에 지친 정신과 육체가
연애라는 안식처를 간구할때
그 휴게소는 안전할수록 좋을테다
갸날픔은 일종의 미성숙함, 미숙함, 나약함이다
연인의 갸날픔 앞에서
사람은 제 존재감을 얻게 되는지 모른다
비로소 자신이 굳세다는 느낌을.
갸날픈 것은 곧 스러질 것 같고 바스라질 것 같다
그래서 보호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 앞에서 사람은 조심스러워진다
섬세해진다는 뜻이다
저 스스로가 섬세함이기도 한 갸날픔은
제 둘레를 섬세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섬세한 마음의 공간을 사랑의 공간을 장만한다
갸날픔 앞에서 사람들은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활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갸날픈 것은 가련하고 서러운 것이니
어여쁘다의 본디뜻이
불쌍하다, 가련하다 였다는 사실은
연민과 미감美感을 포갠 한국인의 상상력 한자락을 보여준다
우람차고 굳센 것이 판치는 세상에서
갸날픈 것은 사람들의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북돋운다
훈민정음은 제 백성을 어엿비 여기는 세종의 마음을 질료로 만들어졌다
세종의 백성은 갸날팠고 그래서 그는 그들을 어여쁘게, 사랑스럽게 여겼다
어쩌면 사람들은 제 갸날픔을 숨기기 위해
제 바깥의 갸날픔을 사랑하는지 모른다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갸날프다
갸날프다 속에는 얇다가 있다
엷다 여리다 여위다 야위다가 죄다 이 얇다 와 한 뿌리에서 나왔다
여윈다는 것은 갸날파진다는 뜻이다
사랑은 여윔의 심리고 아름다운것은 갸날픈 것이다
사랑은 무딘신경, 씩씩한 마음에서는 나올수 없다
사랑은 가느다랗고 잘다
모든 사랑은 잔정이다
가느다란 것은 다 애잔하다
아니 애잔함이 사랑이다
고종석 / 어루만지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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