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스크랩] 오늘 하루

orchid mom 2013. 3. 7. 10:02

 

 

 

 

    식구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치 않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잡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어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유병록·시인)

     


    오늘 하루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감고 잠 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 눈언저리까지 퍼진다.


    (공영구·시인)

     

     

     성인(聖人)의 길 

     

    밖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은 드물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
    아이를 낳고,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다가,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聖人)인 것이다.


    (최인호·소설가)

     

출처 : 두엄자리
글쓴이 : 조각의to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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