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묶어두고 있더라 / 심여수
아침부터 덥다 싶더니 한낮은 말 그대로 불볕이었다 제대로 여름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석양이 길게 하늘가를 드리우는 아름다운 시간 마당의 화초들과 가지런히 심어 둔 야채들에게 싱그러움을 주고자 호수로 물을 길게 뿌렸다
여름을 너무나 싫어하긴하나 불같은 태양의 열정은 부럽고 좋아한다 살면서 그토록 열정을 가져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을까
화초도 나도 물로 목을 축이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한줄기 바람과 노니자니 어디던가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베란다에 고여있던 물이 화초잎에 떨어지고 있었다
물방울은 망치로도 깨기 힘든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인간의 인내의 한계는 어디쯤이며 내가 살아온 세월에서 엄마품에서 노닐던 어린시절을 빼고 진정한 자아를 가지고 지낸 세월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욕구,꿈,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요소가 쌓이고 쌓여서 누군가는 즐거운 인생을 누군가는 괴로운 인생을 살기도 한다
버려야 할 것들과 아껴야 할 것들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털어놓는다 때로는 버려야 할 것을 움켜쥐고 아꼈으며 때로는 아껴야 할 것을 미련없이 버리기도 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 틈이나지 않는다 피곤해서라며 자신의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린 일들은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유라는 것은 경제적인 것도 시간적인 것도 체력적인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것이었다
누군가는 여유가 없다라는 말은 사용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마음 구석구석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본다
어느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묶어두고 있더라 마음의 종인 몸을 내가 묶어두고 있더라 습관의 옷을 입은 인격이라는 이름으로 한 푼어치도 안되는 나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이젠 그 끄나플을 하나 하나 풀면서 울기 때문에 슬퍼지는 마음이 아닌 웃기 때문에 즐거워지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때 지도를 살펴보 듯 그렇게 나서자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진 글귀처럼 '이것 역시 곧 끝나리' 우물쭈물거리며 여러번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러나 이제 나의 여생은 용감하게 한 번만 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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