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물빛 - 마종기

orchid mom 2013. 9. 5. 09:26

 

 

 

 

 

 

 

물빛 /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영혼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런 몸짓을 털어버리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져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혀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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