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쑥국/ 이향원
동생의 돌연사를 엄마에겐 알리지 않았다
장례를 다 마친 다음 청심환과 함께
동생이 사고사한 사실을 고해바쳤을 때
아득한 비몽인지 사몽인지
맨 정신이 아닌 것은 확실하였으나
술 한 잔 달라시며 의외로 담담하셨다
내가 울면 니는 더 큰 소리로 울거제?
그래서 니 앞에서는 절대 안 울기라
울음을 안으로 꾹꾹 밀어 넣어 삼키신다
밤새 엄마의 목에선 쉰 울음소리 가득 차올랐다
다음날 엄마는 동생의 납골당을 찾는 대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마구 행패를 부리셨다
마을에서 풍수로 알아준다는 지관 모셔다가
자식 앞길 훤히 열어 달라 명당에다 묻었건만
이놈의 영감쟁이 그걸 어째 막도 못 하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식하나 건사 못하냐
말이다 묘를 확 파 뒤집을 것이여
엄마가 오늘 한 봉지의 쑥을 불쑥 내미신다
집구석이 이리 쑥대밭이 될라고
너거 아부지 산소에 잔디는 없고 쑥만 푸짐하더라
다시는 이놈의 쑥이 돋아나지 못하게
뿌리까지 없애려고 확 뒤집어놓았다
인제는 별일 없을 끼다
진짜로 괜찮을 끼다
어쩌지 못해 멈춰선 세월의 한 모퉁이에서
남은 가족 어린새끼들이나 쑥쑥 자라나라며
쑥으로 돋았을 아버지의 아픈 쑥국을 끓이면서
나는 아버지의 안부를 여쭙는다
아부지! 지는요 괜찮심니더
견딜 만큼만 아프고, 이길 만큼만 힘듭니더
아부지는 그곳에서 동생과 함께
부디 편안하셔야 됩니데이
- 다음 카페 『시와시와』자작시 게시판
...................................................................
지난 해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여동생으로 인해 시인은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졌었다. 옛 말에 형제자매를 잃는 고통을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고 했다. 형제자매는 수족과 같아서 형제자매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에게는 몸의 절반을 베어내는 고통이 따르고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간 것이나 진배없다고 했다. 더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졸지의 죽음이었으니 그 상실감과 아픔은 더욱 깊었을 것이다. 한 생명이 사라졌을 때 주변에서 그로 인해 죄책감 등의 심리적 고통을 받는 사람은 평균 1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직계가족 외의 형제자매까지 치료지원 범위를 확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시인은 공연한 죄책감에 휩싸여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장례를 다 치루고 청심환을 첨부하여 그 곤혹스러운 말을 끄집어내긴 했으나 서로 가누기도 견디기도 버거운 고통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머니는 냉큼 아버지의 묘소로 달려가 그동안의 원망을 눈물과 함께 토해 놓았다. 홧김에 봉분 위로 올라온 쑥을 뿌리째 다 쥐어뜯어 와서는 딸에게 불쑥 내어밀었다. 집안이 ‘쑥대밭’이 된 데는 마치 그 쑥이 배후의 주범인양 ‘인제는 별일 없을 끼다, 진짜로 괜찮을 끼다’라고 딸을 안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산소에서 돋아난 그 쑥을 다른 각도로 이해한다.
저승의 아버지가 이승의 불가해한 생에 무슨 수로 개입할 수 있으랴. 대신 쑥국을 끓이며 손자손녀 자식새끼들 ‘쑥쑥’ 탈 없이 잘 자라달라는 소망이 밴 쑥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견딜 만큼만 아프고, 이길 만큼만 힘들다’고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며 안부를 묻는다. 죽음 앞에 꼿꼿이 서서 비로소 죽음조차도 넉넉히 이기고 있는 모습을 본다. 슬픔의 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자세가 참으로 의젓하다. ‘아부지! 지는요 괜찮심니더’ 분명히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살아가야할 이유와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그 이유를 위해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권순진
Nearer My God To Thee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뻐꾸기 / 김희정 (0) | 2014.05.01 |
---|---|
[스크랩] 오래된 기도 / 이문재 (0) | 2014.05.01 |
[스크랩] 낙화 - 도종환 (0) | 2014.04.28 |
[스크랩] 차라리 / 박정만 (0) | 2014.04.14 |
[스크랩] 상처 / 홍성란 (0) | 2014.04.08 |